공지사항

    공지사항

    청와대 ‘설 선물’ 로 선정 솔송주 명인 박흥선씨
    매년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 20일간 채취한 송순과 솔잎을 넣어 빚는 솔송주는 일두 정여창 선생(1450~1504)의 문중에서 530년간 전수돼온 가양주다. 솔송주를 빚는 정 선생의 16대 손부 박흥선 명인(전통식품명인 27호·경남 무형문화재 35호)이 지난달 29일 일두고택 돌담 앞에서 카메라를 보고 서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매년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 20일간 채취한 송순과 솔잎을 넣어 빚는 솔송주는 일두 정여창 선생(1450~1504)의 문중에서 530년간 전수돼온 가양주다. 솔송주를 빚는 정 선생의 16대 손부 박흥선 명인(전통식품명인 27호·경남 무형문화재 35호)이 지난달 29일 일두고택 돌담 앞에서 카메라를 보고 서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지리산과 덕유산 사이 수백년 된 60여채 한옥들로 이뤄진 경남 함양의 개평마을(함양군 지곡면)은 예로부터 선비와 문인의 고을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성리학사에서 5현(五賢) 중 한 사람으로 칭송받는 일두 정여창 선생(1450~1504)이다. 개평마을에는 정여창 선생의 생가인 일두고택(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186호)이 있다. 솟을대문을 비롯해 행랑채, 사랑채, 안채, 곳간, 별당, 사당 등 전형적인 경상도 양반집 형태를 띤다. <토지>(KBS·1987), <다모>(MBC·2003), <미스터 션샤인>(tvN·2018) 등 인기 사극 드라마들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의 집성촌인 개평마을의 또 다른 명물은 530년 전통의 가양주인 ‘솔송주’다. 하동 정씨 문중에서 대대로 내려온 송순(소나무 순)·솔잎으로 담그는 전통주다. 지금은 정여창 선생의 16대 손부(손자며느리) 박흥선 명인(전통식품명인 27호·경남 무형문화재 35호)이 빚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올 설에 국가유공자 등 1만명에게 전달할 선물로 선정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지난달 29일 개평마을로 내려가 박흥선 명인을 만났다.

    박 명인이 솔송주를 가열해 증류주인 담솔을 내리면서 증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밀가루 반죽으로 소줏고리의 이음매를 막고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박 명인이 솔송주를 가열해 증류주인 담솔을 내리면서 증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밀가루 반죽으로 소줏고리의 이음매를 막고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성리학 5현’ 정여창 선생 가문에서 빚어온 530년 전통 가양주
    경남 함양의 물과 쌀에 송순·솔잎을 넣어 발효시켜 만들어
    “시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워…술은 못 하지만 혀끝만 대도 알아”

    현대식 제조장 지어 대량생산…발효온도 맞추느라 시행착오
    “10독이나 담근 술이 쉬어버려 다 깨…술독에 빠져 죽고 싶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주 선정에 주류대상도 연거푸 수상
    대선 1년 전 문 대통령도 김정숙 여사와 함께 찾아와 마셔
    “큰딸에게 비법 전수…국민들이 전통주 많이 애용해주시길”

    - 대통령 내외 설 선물 세트에 전남 담양의 약과·다식 등과 함께 솔송주가 선정됐는데, 선정 소식은 언제 들었나요.

    “농협으로부터 3개월 전에 통보받았어요. 발표 전까지 함구하라고 해서 같이 일하는 몇몇 빼고는 아무에게도 안 알렸죠. 옛날 임금님께 진상하는 술을 빚는다는 마음으로 정성껏 만들었어요. 시간이 좀 더 넉넉했다면 술을 더 숙성시켜 맛이 한층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어요. 저희로서는 정말 영광이고 감사한 일이에요.”

    - 선정되기 전 절차가 있었다고요.

    “작년 10월쯤 농협에서 시음주를 올려보내달라고 요청이 왔어요. 농협에서 품목을 선정하고 최종 선택은 청와대가 하는 것 같아요.”

    - 청와대 납품은 다 끝났습니까.

    “1월15일에 납품을 마쳤어요. 1만개의 도자기 병에 솔송주를 500㎖씩 담았어요.”

    - 대통령의 설 선물이라고 하니, 전국에서 주문이 폭주했겠는데요.

    “1월23일 TV와 신문에서 보도가 나온 후 주문이 폭주해서 너무 힘들었어요. 술 빚고 술 담을 용기를 일일이 세척하고 포장하느라 혼이 쏙 빠졌죠. 배송일을 맞춰야 하니까요. 매일 새벽 4시까지 일했는데 지금은 조금 나아졌어요.”

    [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사케는 수입돼 비싸게 팔리는데…우리 전통주는 무시당해 오기 생겼죠”

    - 솔송주는 어떻게 빚나요.

    “당해 생산, 당일 도정한 함양의 쌀을 깨끗이 씻어 고두밥을 지어 식힌 후 누룩과 함양의 물을 혼합해 사흘 정도 발효시켜 밑술을 만들어요. 밑술이 얼마나 잘 발효됐느냐가 술의 품질을 결정하는 관건이죠. 이 밑술에 식힌 고두밥과 살짝 찐 송순·솔잎을 섞어 덧술을 만든 뒤 25~30일가량 발효·숙성시켜요. 그런 다음 채와 창호지에 걸러 서늘한 곳에서 20일가량 보관한 후 맑은 윗술을 떠내면 솔송주가 완성되지요.”

    - 송순과 솔잎은 어디서 구합니까.

    “개평마을이 옛부터 노송이 울창했어요. 조상들을 모신 선산을 비롯해 주변에 소나무가 많죠. 송순은 매년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 20일 안에 1년치를 다 채취해야 해요. 워낙 조금씩밖에 안자라기 때문에 여럿이 가서 몇날며칠에 걸쳐 따죠.”

    대학자인 정여창 선생의 집에는 수많은 손님이 드나들었다. 이들을 접대하고 제사 때 제주(祭酒)로도 사용하기 위해 정 선생의 부인 완산 이씨가 가양주를 빚는 데 사용한 쌀이 한 해 300석에 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금은 솔송주로 명명된 이 가양주는 일두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내려왔다. 은은한 솔향과 부드러운 목넘김 그리고 깔끔한 뒷맛이 특징이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이 가양주는 종손 집안이 아니라 정여창의 13대손으로 제천 현감을 지낸 눌재(訥齋) 정재범 집안에서 빚어왔다. 지금 정씨 문중 가양주의 전통을 잇고 있는 정천상·박흥선씨 부부도 눌제의 증손자·손부다.

    - 박 명인은 언제 남편 정천상씨(73)와 혼인해 개평마을로 들어왔나요.

    “1976년, 제 나이 스물다섯 살 때였어요. 저는 개평마을에서 8㎞가량 떨어진 함양군 함양읍에서 나고 자랐어요. 3남3녀 중 맏딸로, 위로 오빠 두 분이 계세요. 서울간호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성모병원에서 간호사로 3년쯤 근무했어요.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하자 아버지는 딸을 영영 잃을까 염려되셨는지, 맞선을 보라고 하셨어요. 세도가 대단한 양반집이라면서요. 그래서 시집 왔더니 고생바가지였죠(웃음).”

    - 시집살이가 고됐나보죠.

    “하동 정씨들의 자부심이 대단했어요. 성품이 굉장히 깐깐하셨던 시어머니께서는 제게 잘해주신다고 했겠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많이 어려웠죠(웃음). 그런데 시어머니야말로 혹독하게 시집살이를 하셨어요. 예를 들면 시할머니께 진짓상을 올리면 양손을 앞으로 모은 채 식사를 마치실 때까지 서 있다가 상을 들고 뒷걸음질로 방에서 나오셨어요.”

    -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술 빚는 법을 어떻게 전수했나요.

    “저는 시어머니께서 술 빚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자연스럽게 제조법을 익혔어요. 어머님의 술 빚는 솜씨가 뛰어나셨어요. 남편 말에 의하면 어릴 때부터 어머님이 담근 술을 맛보기 위해 찾아오는 분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해요. 어머님께서는 남편을 일찍 여의셨는데, 저녁이면 늘 솔송주를 머그잔에 한 잔 정도 드시고 주무셨어요. 시어머니는 105세까지, 시할머니는 97세까지 장수하셨죠.”

    - 가양주에 대해 시어머니가 특별히 당부한 말씀은 없었나요.

    “잘 빚으라고 하셨죠.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가양주들이 많이 사라졌잖아요. 시어머니는 술 항아리와 나무 단지를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 놓아 발각되지 않았다고 해요.”

    - 박 명인도 술 좀 하십니까.

    “한 잔도 못 마셔요. 처음 시집올 때는 누룩냄새도 맡지 못했어요.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혀끝만 대도 술이 잘 빚어졌는지 판단할 수 있게 됐죠.”

    박 명인은 솔송주의 대중화를 위해 1996년 주조 허가를 받고 개평마을에 현대식 제조장을 설립했다. 일두 가문에서 옛날부터 부르던 ‘송순주’이라는 이름도 이때 ‘솔송주’로 바꿨다. 법인명은 ‘명가원’으로 했다가 지난해 ‘솔송주’로 변경했다. 약주인 솔송주(13도)와 이 솔송주를 증류해 숙성한 담솔(40도), 그리고 고려시대 청주인 녹파주 등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 왜 대량생산을 하게 된 건가요.

    “주위에서 이렇게 맛있는 술을 많은 분들이 즐길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 가정에서 소량 빚는 것과 현대식 제조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것은 차이가 클 테니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겠어요.

    “술이 발효되면 온도가 엄청 올라가는데 이때 온도 조절에 실패하면 술이 쉬어버려요. 집에서 항아리에 조금씩 담글 때는 쉬웠는데 대량으로 하려니 발효 온도를 맞추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쌀 50가마니를 써서 힘들게 담근 술을 10독이나 깨어버린 적도 있죠. 그때 심정이오? 그냥 술독에 빠져 죽어버리고 싶었지요(웃음).”

    -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군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방법을 찾았어요. 무엇보다 일본 사케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비싸게 팔리잖아요. 그런데 우리 전통주는 무시당하고 외면받는 현실이 견디기 힘들었어요.”

    솔송주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공식 만찬주, 2008년 람사르총회 건배주, 2017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환영 만찬 건배주로 쓰였다. 우리술품평회 대상,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대상도 연거푸 수상했다. 명성이 높아지면서 박 명인 부부가 사는 눌제고택(일두고택 바로 옆) 한쪽에 마련된 ‘솔송주 문화원’을 찾는 관광객도 늘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도 이곳을 방문했다.

     

     

     

     

    2016년 6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정숙 여사가 눌재고택에서 솔송주를 맛보며 웃고 있다. 맨 왼쪽은 문성현 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김 여사 옆은 문 위원장의 부인 이혜자씨다. 영농조합법인 솔송주 제공

    2016년 6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정숙 여사가 눌재고택에서 솔송주를 맛보며 웃고 있다. 맨 왼쪽은 문성현 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김 여사 옆은 문 위원장의 부인 이혜자씨다. 영농조합법인 솔송주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은 언제 왔습니까.

    “2016년 5월 문재인 대통령(당시는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 경남지역 지지자들과 함께 지리산 산행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 급히 솔송주를 가져다 달라는 연락을 저희 직원이 받았다고 해요. 대통령께서는 솔송주 소문을 많이 들었다고 하시면서 술맛을 보시고는 저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대요. 그런데 한 달 후 정말로 손수 운전을 하셔서 김정숙 여사와 함께 방문하셨어요. 당시 문성현 (현)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부부도 다른 차로 함께 오셨고요.”

    - 문 대통령 내외가 그날 술 좀 드셨나요.

    “솔송주와 담솔을 내드렸는데 문 대통령께서 모두 4잔 잡수셨고, 김정숙 여사는 돌아가실 때 운전을 해야 하니까 혀끝만 살짝 대셨어요. 문 대통령께서는 40도짜리 담솔을 좋아하셨어요. 제가 글을 좀 남겨달라고 부탁드렸죠. 대통령께서 대청마루에 앉아 앞동산을 한동안 바라보시더니 ‘솔송주는 신선의 술이다’라고 쓰셨어요.”

    - 또 다른 에피소드는 없습니까.

    “당시 인상적이었던 것은 문 대통령의 참 오래 신은 것 같아 보이는 낡은 등산화였어요. 타고 오신 차도 낡았고요. 이후 양정철 비서관 등과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나신다는 말씀을 전해듣고 750㎖ 담솔 두 병을 양산 자택으로 보내드렸어요.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오신 후 눌제고택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겠다고 하셨다는데, 결국 오시지 못했어요. 급속도로 탄핵정국이 됐고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었으니까요.”

    - 솔송주의 제조 비법은 누구에게 전수되나요.

    “큰딸(정가영씨)이 배우고 있어요.”

    - 앞으로의 바람이나 계획은 뭔가요.

    “청와대 설 선물 품목으로 선정되면서 책임감이랄까,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국민들이 우리나라 전통주를 많이 애용해주시면 좋겠어요.”

    농업회사법인 솔송주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찾아가는 양조장’이기도 하다. 예약을 하면 누구나 눌재고택에서 솔송주 빚기, 소주 내리기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한겨울임에도 솔송주가 익어가는 개평마을에는 이날 따라 따뜻한 햇볕이 돌담길을 따라 드넓게 내리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