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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전통주 찾기] “고소리술에는 제주 사람들의 삶이 담겨있습니다”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에 위치한 제주 고소리술 익는집에서는 지금도 전통 방식으로만 술을 만들고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여행스케치=서귀포]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3호인 오메기술과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소리술은 현재 전수자들에게만 제조법이 전해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 술이다.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제주 고소리술 익는집(이하 ‘술익는집’)’은 고소리술 전수교육조교인 김희숙 대표가 전통 방식으로만 술을 빚어내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제주 여인들의 고단했던 삶이 담긴 술
    “제주 술의 역사는 타 지역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화산 회토로 이루어진 ‘뜬땅’이 많다보니 논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환경을 지녔죠. 쌀 생산이 턱없이 적어 술의 재료도 좁쌀이나 보리쌀로 빚는 전통이 만들어졌답니다.”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은 좁쌀로 만들어내는 술이다. 오메기는 좁쌀의 제주도 방언으로, 오메기로 떡을 만들어 콩가루나 팥고물에 굴린 것이 최근 관광상품으로 인기 많은 오메기떡이다. 오메기술은 고물을 묻히기 전의 오메기떡을 술떡으로 사용해 만드는 것으로, 결국 이름 자체가 좁쌀로 만든 술이란 뜻이다.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은 제주에서 재배된 좁쌀(오메기)을 재료로 만든다. 사진 / 노규엽 기자





    고소리술은 오메기술을 여러 번 담금질해야 만들어진다. 술익는집에서는 오메기 맑은술과 고소리술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오메기술은 우리가 흔히 아는 막걸리를 떠올리면 된다. 누룩을 넣고 발효시킨 후 위에 맑은 술만 걸러내면 오메기청주이고, 아래에 가라앉은 술은 오메기술(탁주)이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메기술을 재료로 증류식 소주를 만들어낸 것이 고소리술이다.

    김희숙 대표는 “오메기술은 좁쌀을 경작한 기간만큼 오래 전부터 만들어왔을 것”이라며 “고소리술은 고려시대(12세기 말~13세기)에 몽골을 통해 증류 기술이 들어오며 시작된 것으로 안다”고 말한다. 현재의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등지에 몽골인이 침입해 살며 탐라인과 몽골인이 어우러져 살았던 과거를 이야기함이다.

    실제로 한반도에 남아있는 증류식 소주는 몽골에 의해 시작되었다. 특히 몽골의 전초기지가 있었던 제주를 비롯해 안동과 개성에서 만들어진 소주를 우리나라 3대 소주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것이다. 다른 지역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테지만, 제주 고소리술에는 선인들의 애환이 그대로 남아있다.

    “제주도는 육지와 떨어진 곳이잖아요. 조선시대에는 출륙 금지령까지 있어 제주 사람들이 육지를 맘대로 오갈 수 없었으니 물품도 이동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고소리술에는 자급자족했던 제주 사람들의 삶과 추억이 담겨있는 겁니다.”

    옛 시절, 제주도에서 생산과 소비를 책임지는 것은 안주인(=여성)이었다. 그네들은 낮에는 밭일이나 물질을 통해 식량을 얻어야 했고, 돼지를 키워서 상례, 혼례, 손님접대 등에 필요한 고기도 장만했다. 이런 자리에 술이 빠질 수 없는 법. 고소리술을 준비해 두어야 하는 것도 여인들의 몫이었다.

    “제 시어머니 김을정 여사(고소리술 기능보유자) 시절까지만 해도 제주 여인들은 낮에 바깥에서 일하고 돌아와 저녁이 되면 가족들 밥 차려먹이고 술을 닦았죠. 고소리술은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일상생활처럼 술을 닦아야 했습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고소리술은 마시기 위해서만 만들었던 술이 아닌, 돈을 만들기 위해서도 만들었던 술이다. 술이 많이 모이면 오일장에 내다팔아 가재도구나 먹을 것을 장만했던 것. 고소리술의 계통을 이어오고 있는 술익는집도 그 삶의 연속으로 지금까지 왔다. 제주성읍민속마을에서 10대를 살아온 이성화 할머니에 이어 며느리인 김을정 할머니가 전승을 받았고, 그 명맥은 다시 며느리인 김희숙 대표와 김 대표의 아들인 강한샘 전수생까지 4대째 이어지고 있다.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만든 깊은 맛
    고소리술의 이름은 술을 만드는 도구에서 온 것이다. 술을 만들 때 증류기에서 술이 되어 내려오는 통로를 제주어로 ‘고소리’라 부른다.

    “고소리술은 오메기술을 여러 번 담금질해서 만듭니다. 오메기술을 담은 증류기 아래 밀가루로 시루번을 붙여 밀봉하고, 증류기 위에는 물을 담은 그릇을 얹어 끓이는 거죠. 알콜은 78도 정도에 끓어 기체가 되어 올라오고, 물이 담긴 그릇을 만나며 다시 액체가 돼서 고소리를 따라 내려와 모입니다.”

    이를 반복하기를 여러 번. ‘눈물 한 방울에 술 한 방울’이라 할 만큼 방울져 내려온 고소리술 원액이 모이면 물과 섞어 소주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소리술은 알콜농도가 30도에 이르지만 맛이 깊고 순하면서도 은근하게 올라오는 취기로 인해 술을 마시는 흥취가 있다. 제주도에서는 이 술을 별떡, 김치전, 고구마메밀범벅 등 간단한 안주를 곁들어 먹는다.

    “고소리술은 오직 물과 누룩만으로 술을 빚어냅니다. 누룩이 많이 들어가면 그 냄새 때문에 역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죠. 그래서 누룩을 조금만 넣고도 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비법입니다. 누룩 외에는 첨가물이 없으니 도수가 높아도 목넘김이 좋고 숙취도 없는 것이죠.”

    수고스러운 전통방식을 이어온 노력은 최근 들어 인정받고 있다. 조선 비즈에서 제정한 ‘2017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우리술 약주/청주’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고,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선정하는 ‘2018년 찾아가는 양조장’에도 포함됐다. 2018년 말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올해의 전통식품명인 9명 중에 김희숙 대표가 이름을 올리는 결과도 낳았다.

    한편, 술익는집에서는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누룩 만들기, 담금주 빚기, 고소리술 내리기 등 가양주를 만드는 체험과 시음을 하며 쉬어갈 수 있는 일정이다. 제주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이 궁금하다면 택배로도 주문이 가능하다. 다음날이면 전국 어디든 택배를 받아볼 수 있다.
     



    김희숙 대표는 현재 제주에서 고소리술을 만들며 전수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술익는집을 방문하면 카페에서 쉬어가거나 술 빚기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Info 제주 고소리술 익는집
    체험프로그램은 10인 이상 예약이 가능하다. 체험 시간은 1시간~1시간 30분 정도이며, 비용은 1만5000원~2만5000원 사이이다.
    주소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중산간동로 4726

    출처 : 여행스케치(http://www.ktsket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