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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우리술 102]우리술의 정체성은? “내 이름을 막걸리라 해두자”
전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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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자본에 휘둘려 존재가치 잃어가는 전통주, 불안한 운명

   
▲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의 라이즈 호텔 15층 ‘사이드노트클럽’에서 최근 2년 동안 선정된 ‘찾아가는 양조장’에서 생산한 전통주 시음회가 있었다. 사진 전면에 놓여 있는 술들이 13종의 시음주며 뒤에 바텐더들이 전통주를 활용한 칵테일을 제작하고 있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내 이름을 막걸리라고 해두자. 몇 천 년 전부터-정확히 언제인지는 아무래도 좋다-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나를 즐겨 마셔왔다. 농경을 선택했기에 하늘과 땅이 정해준 만큼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사람들. 만들 때의 재료는 달랐을 수 있지만 만드는 기본 방식은 같았던 수천 년의 시간들. 하지만 나를 부르는 이름은 너무도 많았다. 흰색을 띄고 있고 백주(白酒), 지게미가 있어 재주(滓酒), 묽게 희석돼 박주(薄酒), 농사일 가운데 마신다해 농주(農酒), 곡물로 빚었다해 곡주(穀酒). 탁한 빛깔이어서 탁주(濁酒) 등 다채롭기 그지없다. 그래서 오늘의 눈으로 내 이름을 해둘 뿐이다. 

그런데 이 이름이 내게 붙여진 것은 고작 110년 정도의 일이란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고, 내일은 두려운 격변의 시간”이었던 시절인 1899년, 서재필 박사가 창간한 〈독립신문〉의 ‘위생론에 관한 기사’의 한 구절에 ‘ㅁㆍㅅ걸니’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것. 물론 이리 불리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는 한참 전의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유일한 발효음료로서 모든 사람들이 즐겼던 조선시대 때의 내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내 이름은 ‘탁주’ 혹은 ‘탁료(濁?)’였다. 그리고 지게미가 없게 맑게 거른 것은 ‘청주(淸酒)’였다. 이와 함께 술의 약용성을 중시했던 만큼 청주의 다른 이름인 약주(藥酒)라는 이름도 자주 등장한다. 실록에 이 단어들이 등장하는 횟수는 각각 16건과 8건, 97건, 94건이다. 아무래도 왕과 그 신하들의 공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기록물이니 ‘청주’와 ‘약주’가 더 자주 거론된 듯싶다.  

앞서 말한 그 격변의 시간으로 다시 가보자. 의병 활동이 만주에서의 독립군 활동으로 변화되던 시절, 여러 매체에서 나를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것은 일제의 주세령과 주세법 탓이었을 듯. 1910년까지 나를 소개하는 글들은 딱딱한 기사와 광고 정도였다. 이름도 여전히 통일성 없이 ‘막걸니’ 혹은 ‘국자(麴子)’, ‘탁주’로 소개되고 있었다. 

그러다 3.1운동이 지난 뒤부터 나에 대한 글은 일상속의 친근한 벗처럼 다뤄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1924년에 쓰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라는 조리서에 ‘막걸리’라는 이름으로 제조법이 실리기까지 한다. 물론 고조리서에도 나는 분명 존재한다. 만드는 방법도 다양해서 붙여진 이름만 수백이 넘을 정도. 이름이 이렇게 다양해도 나를 구성하는 본질은 쌀과 누룩, 그리고 물이다. 간혹 다른 곡물이 쓰이지만, 제주도의 오메기(차조의 사투리)와 강원도의 감자, 그리고 메밀 정도만 주인공이 됐을 뿐 대부분의 지역에선 쌀을 중심에 둔다. 이렇게 곡물과 누룩, 그리고 물이 만난 뒤 시간이 보태지고 적당한 온도만 유지되면 사람들은 나를 마시면서 맛나다고 말한다. 또 한 번 빚어진 내게 추가로 고두밥을 줘서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데, 잘 빚어지면 시중에서 판매되는 희석식 소주보다 도수가 높은 19%까지 나오게 된다. 그 이상이 되면 나를 만들던 효모들이 살 수 없게 돼 이 도수를 발효음료의 최대치라고 한다. 물론 맥주 중에 미친 척하며 알코올 도수 50% 이상의 음료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영국의 브루독), 이는 엄밀하게 말해 발효가 아니라 냉각증류이다. 즉 발효된 음료를 얼려서 얼음을 걷어내는 식으로 물을 제거하면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는 방식인 것이다.

여기서 내 이름과 관련해 확인할 대목이 하나 있다. 쌀로 잘 빚어진 술이 최고 19%의 알코올 도수를 낸다고 했다. 내 출발지점이 바로 여기다. 다 익은 술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나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지게미를 걷어내도 탁도가 있으니 청주는 아닐 것이며, 거르면서 물을 타지 않았기 때문에 막걸리는 더욱 아니다. 

   
▲ 다양한 전통주가 있음에도 노출빈도가 낮아,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 술들을 홍보하기 위해 계획된 지난달 29일 시음회 행사에는 대표적인 핫플레이스답게 많은 젊은이들이 참석했다. 사진은 전통주 소물리에가 술을 따르는 모습

이런 술을 예전엔 합주(合酒)라고 불렀다고 한다. 청탁과 알코올감을 한 몸에 모두 갖고 있는 상태이니 한자어로서는 정확한 호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이름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주세령과 주세법이 나를 지배하던 핵심 질서인 세상에서 내 출신인 가양주는 설움과 핍박의 대상일 뿐이었다. 오직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던 술만 합법적인 존재로 대우받게 되면서 합주는 사라지고 오직 청탁이 나를 구분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청주라는 내 형제는 일본술에 그 이름을 빼앗겨, 약주로 불려진지 이미 한 세기를 훌쩍 넘기고 말았다.

더욱이 해방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나와 내 형제들은 존재의 의미를 서서히 상실하더니 어느 순간부턴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홍길동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형제가 있고, 100년 전과 다른 제조법과 값싼 재료를 사용해도 같은 형제로 취급받는 세상. 과연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국외자가 돼 본 적 없는 내가 오늘은 거대 자본으로 치장하고 솟아있는 증류탑과 산을 삼킬 만큼 거대한 스테인리스 구조물에서 매일같이 쏟아내는 값싼 음료를 지켜보며 신음하고 있다.

장인은 사라지고 기술만 남은 시대, 자본의 큰 날개 짓은 정성으로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형제들을 쇼윈도 케이스 같은 ‘전통’에 가둬 넣고 있다. 하늘과 땅의 결실로 만드는 이치는 수천 년이 한결같지만 불과 100년 만에 자본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수의는 우리들을 덮어 누르고 말았다. 소설 <모비딕>에서 이스마엘이라 불리던 사람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지만 대한민국에서 나는 과연 정체성을 잃지 않고 생존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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