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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아닌 전통주의 ‘맛’을 찾아서
전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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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아닌 전통주의 ‘맛’을 찾아서

청계천변 어딘가. 기시감을 안겨주는 <호수 커피숍>이라는 간판을 지나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별세계가 펼쳐진다. 이름하여 <술다방>. 낮에는 차를 팔고, 밤에는 술을 판다. 아무 술이나 팔지 않는다. 전부 한국에서 나고 만들어지는 ‘전통주’다.

옛분위기 넘쳐나는 간판을 지나 문을 열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전통주란 무엇인가. 지난주 다녀온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는 <참이슬>을 한국 전통주란 이름으로 팔았다. 한때 한류 열풍의 한 축을 담당했던 막걸리도 생각난다. 요즘 잘 팔린다는 ‘화요’ 같은 고급소주도 전통주일 것 같다. 조금 더 고상하게 가자면 <감흥로>, <이강주>와 같은 것도 라인업에서 뺄 수 없겠지.

소주’, ‘막걸리가 끝이 아니다

이 중 몇 개는 전통주고 몇 개는 전통주가 아니다. 주세법 3조 1-2항에 따르면 전통주란 ‘무형문화재’나 ‘식품명인’, ‘농업 및 어업경영체 및 생산자단체’가 만들거나 주류제조장 소재지 관할 지역 농산물을 주원료로 하여 제조하는 주류를 말한다. 한국법은 전통주를 ‘소주’나 ‘막걸리’ 같은 주종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술다방>의 메뉴판에서는 익숙한 주류의 이름을 찾기 어렵다.

<호산춘>이라고 들어봤는가. 찹쌀과 누룩, 솔잎을 원료로 만든 투명한 ‘약주’다. 주세법상 약주는 전분을 누룩 등으로 여과하여 발효한 술로 청주와 다른 점은 ‘첨가물’을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호산춘에는 ‘솔잎’이 첨가물로 들어가 있다. 솔잎이 들어가 있다지만 ‘아몬드’ 향이 난다. 아마레또와 위스키를 섞은 칵테일 <갓파더>와 비슷한 맛이다.

또 다른 약주인 <니모메>에는 진피(귤껍질)가 첨가물로 들어가 있다. 기분 좋은 약재 향기가 난다. 입안에 머금으면 과실향이 가득 퍼진다. 목 넘김도 익숙한 소주의 그것과는 다른 부드러움이다. 제주도의 양조장에서 제주도산 감귤껍질로 만든 술이다.

<오희>는 막걸리와 같은 ‘탁주’로 분류되는 술이다. 선홍색을 띄는 이 술은 익숙한 막걸리와는 전혀 다른 맛이 난다. 상큼한 향기가 퍼지면서 청량하게 목을 타고 들어가는 느낌이 참 좋다. 오디를 발효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만들어지는 ‘탄산’이 매력 포인트다.

<문경바람>이라는 녀석도 있다. 이 술은 ‘일반증류주’로 분류된다. 경상북도 문경의 특산물인 사과를 오크통에 숙성해서 만든 술인데, 서구권에서는 익숙한 ‘브랜디(포도를 증류해서 만든다.)’와 같은 과실 증류주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특산품으로 깔바도스(Calvados)라는 사과 증류주가 있는데, 지역만 다른 대한민국 문경에서 만든 술이라고 보면 된다. 무겁게 목을 넘기며 퍼지는 향이 일품이다.

서로 다른 맛과 색, 향을 가진 6종의 전통주를 직접 마셔봤다. 이 대표는 각 전통주에 녹아있는 ‘스토리’를 이야기해줬다. 인터넷에서도 못 구매하는 <호산춘>은 황희정승가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술이라고.

술다방을 운영하는 술펀의 이수진 대표는 “전통주라는 용어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며 “기존 전통주가 갖는 개량한복 입은 것 같은 느낌이 싫다. 우리는 깔바도스와 같은 방식으로 만드는 <문경바람>을 프랑스 술이라고 안 한다. 한국에서 나오는 술을 하나의 콘텐츠로 바라보고 일본의 사케나 프랑스의 와인과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전통주

전통주에 대한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다. 소주, 청주, 막걸리가 끝이 아니다. 우리가 ‘양주’라 부르는 위스키나 브랜디와 같은 방식으로 조주하는 전통주도 있다. 맛도 절대 명주(라 부르고 비싼술이라 읽는다.)라 평가 받는 이들에 비해 꿀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어디서 맛보지 못하는 특유의 ‘개성’은 덤이다.

<술다방>에서는 전통주 베이스의 창작 칵테일도 직접 개발하여 판매한다. 사진은 전통소주 <담솔> 베이스의 칵테일 <상록수>. 마티니와 비슷한 맛인데 독특한 향이 재밌게 다가온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렇게 다양한 전통주를 시중 주점에서 만나기는 어렵다. 다양한 오프라인 채널에 유통되기에 출고량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전통주 진흥 정책의 일환으로 여타 주류와 다르게 ‘온라인’에서 전통주 판매를 허용했지만, 온라인에서 보기 힘든 전통주도 꽤 많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주류시장에서 전통주의 출고액 비중은 2010년 이후 매년 약 10% 수준이다. 지난해 7월 ‘주류 고시 및 주세 사무 처리 규정’의 개정으로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가 전면 허용되며 16년 대비 온라인 매출이 271% 증가(17년 11월말 기준, 22억 400만 원 규모)했지만 아직도 미미하다는 게 농림축산식품부의 평가다.

유통채널의 숙제

전통주를 시중에서 만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유통의 어려움이 꼽힌다. 대부분 살균되지 않은 상태인 ‘생주(生酒)’로 유통되는 전통주는 시중에서 볼 수 있는 희석식 소주나 맥주와는 달리 실온이 아닌 냉장보관을 해야 한다. 유통 과정에서도 제대로 된 맛을 느끼기 위해선 ‘냉장유통’이 필요한데, 냉장차량과 보관시설을 갖추기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평가다.

마찬가지로 전통주는 ‘생주’이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짧다. 술펀에 따르면 전통주의 유통기한은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2주에서 6개월 사이다. 짧은 유통기한 때문에 미판매 재고 폐기의 위험은 항상 뒤따른다. 애초에 영세한 양조장이 대부분이기에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추는 것이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판매되지 못하고 남을 수 있는 재고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로 부산과 경남 지역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이는 막걸리 ‘생탁’을 서울에서 보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생탁의 유통기한은 제조일로부터 20일까지다.)

이 대표는 “(2년 전부터 뜨고 있는) 화요는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적자를 감수하고 투자해서 손익분기를 맞춘 사례”라며 “그런 대규모 투자를 영세한 전통주 양조장이 할 수는 없을 것”이라 설명했다.

콘텐츠에서 길 찾기

술펀은 2014년 11월 창업 이후 영세한 전통주 양조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을 줄곧 고민했다. 처음에는 국내 소비자가 전통주를 잘 알지 못해서 생긴 문제라고 봤다. 그래서 다양한 전통주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데 집중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현재 술펀은 전통주의 원료 수급, 판로 개척, 물류, 제품기획, 마케팅, 브랜드, 디자인 등 전통주의 유통 과정 전반에 걸쳐 총체적인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비즈니스 전략을 바꾸었다. 과거 전통주 제품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이 술펀의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제품이 아니라 ‘콘텐츠’로 전통주의 포지셔닝을 확립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에서다.

이 대표는 “창업 초기에는 양조 장인들의 고민해결사를 목표로 했다. 3년 동안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고민했다”며 “결국 콘텐츠로 가야한다. 단순히 ‘영상’이나 ‘텍스트’를 만든다는 것이 아니다. 전통주가 원료부터 소비자까지 오는 다양한 과정, 현재 시중에서 논란이 되는 전통주의 의미나 술의 역할에 다른 관점의 스토리를 부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술펀은 현재 ‘한국술 콘텐츠 플랫폼’을 표방한다. 술펀의 오프라인 콘텐츠 플랫폼 중 하나가 <술다방>이다. 전통주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한 음료를 소개하고 있는 공간이다. 자체적으로 전통주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 레시피를 개발하기도 하고, 전통주를 알리는 스토리텔러 ‘주령사’를 육성하기도 한다.

<술다방>을 나서면서 나는 두 개의 전통주를 친구의 집들이 선물로 샀다. 어디에서나 맛볼 수 없는 전통주, 아니 한국술이다. 언젠가 어디에든 알려지고 싶은 이들이기도 하다.

선물용으로 <술다방>에서 구매한 약주와 탁주. 친구 와이프가 참 좋아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